오늘날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오래 바라보기보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읽어내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그 속도는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관계와 맥락을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타인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 판단하며 발생하는 윤리적 충돌과 사회적 마찰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천천히 쌓인 이 경험들은 시각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유연해지는 행위를 찾아 작업 속에 투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문제의식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과 인식의 불확정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 안에서 윤리와 친절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가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 하는지 탐구하고 있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의 간(間)은 ‘사이’를 의미한다. 이 글자는 문틈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형상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결국 서로 사이를 만들고 그 틈을 통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개인화가 심화되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아이러니하게 타인과의 관계를 피할 수 없으며 서로의 공존을 위해 배려와 친절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삶은 무엇을 바라보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양자역학은 하나의 흥미로운 비유가 된다. 미시 세계에서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어 존재하기보다 여러 가능성이 중첩된 상태에 있으며 관측을 통해 비로소 확정된 특정한 상태를 드러낸다. 양자적 불확정성을 관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타인을 쉽게 규정하거나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 바라보려는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익숙한 거시적 시선에서 벗어나 서로를 조금 더 미시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태도는 현재 사회에서 더욱 필요한 윤리이자 친절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요소들은 빛과 전자적 파동의 움직임, 파장, 광결정, 입자와 분자, 박테리아, DNA의 치유 과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며 관찰을 통해 발견되는 자연의 구조들이다. 예를 들어 비 온 뒤 흙 냄새의 원인이 되는 지오스민과 이를 매개로 이어지는 인간, 동물, 식물의 생존 관계, 푸른 색소가 아닌 나노층 구조에 특정 파장의 빛이 있어야 색을 만들어내는 모르포나비의 구조색,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인 보석풍뎅이의 등딱지, 벌새와 공작새의 깃털, 오팔의 실리카 구슬 등은 모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상호작용과 관찰을 통해 그 형태와 감각과 존재를 드러낸다. 나는 이러한 자연의 작동 원리를 회화와 설치 조형 작업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발견된 구조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친절한 행위를 통해 비로소 관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와 그 안에서 생성되는 형태와 감각, 윤리 연결의 가능성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신체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유연해지고 싶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작업 속에 곡선의 구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간의 신체는 겉으로는 직선적으로 접히지만 그 내부를 이루는 장기와 혈관, 세포들은 대부분 부드러운 곡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에서 곡선의 친절함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DNA가 손상되었을 때 우리 몸은 규칙적인 곡선의 흐름을 따라 빠르게 복구를 진행한다. 신체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뾰족한 것을 감싸 보호할 때, 생각이나 마음을 우회해 할 때, 서로 다른 성질의 것들을 이어 붙일 때 경계를 부드럽게 연결해 주는 곡선이 존재했다. 그러나 단순히 흐려지는 것이 아닌 각각 다른 성질을 명확히 존재한 채로 유연하게 이어준다고 느꼈다.
몸의 움직임, 속도, 리듬과 일상의 흔적들로 나의 추상 언어를 연구하고 있다. 나에게 곡선은 현대 사회에서의 공존과 친절을 위한 하나의 은유적 구조이다. 나는 곡선이 가진 다양한 속성과 개념을 시각화하고 그로부터 발현되는 유연한 연결의 윤리를 탐구하고 있다.